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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박근혜 회고록 서문을 통해 엿보는 박 전 대통령의 권력관 일단

박근혜 회고록 북콘서트에 참석한 박 정부 인사들/ 이미지 출처=YTN

권력은 허무한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목표가 있었고, 대통령이 되어서 그 목표를 이루고자 최선을 다해 일부라도 이를 해 놓을 수 있었기에 나는 권력이 결코 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근혜 회고록, 「어둠을 지나 미래로」 서문 중에서



이곳 대구 달성으로 돌아온 지 벌써 1년 6개월이 넘어간다.


이곳에서의 일상은 매일매일 새롭다. 간단한 아침을 먹고 나면, 재활과 운동으로 나의 일과는 시작된다. 틈틈이 책을 읽기도 하고, 정원을 걷기도 한다. 비슬산이 가까이 있어 정원에 날아오는 후투티와 딱새 등 산새들을 바라보거나, 정원에 새로 심은 산딸나무, 모감주나무, 쑥부쟁이 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단조롭지만 평온한 일상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진다.


2022년 가을 무렵, 중앙일보의 인터뷰 요청과 회고록 제안을 받고 흔쾌히 수락하기보다는 망설임이 많았다. 당시 몸 상태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이제는 정치를 떠나 초야에 묻힌 내가 비교적 근간의 정치사를 풀어 놓음으로써 오히려 또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런데도, 최종적으로 회고록을 집필하기로 마음먹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의 의무감 때문이었다. 내가 헌정사에 유일
하게 탄핵으로 퇴임한 대통령이지만, 재임 시절의 이야기와 그 이후의 이야기를 옳고 그름의 판단을 넘어 있는 그대로 들려드리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내는 것은 나의 지난 정치 인생에 대한 회한 때문도 아니며, 스쳐 간 인연들에 대한 원망 때문도 아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후회스러운 결정이나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것대로,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담백하고 진솔하게 이야기를 드리고 싶었고, 최대한 그렇게 했다고 본다.


매 순간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의 편린은 1인칭 시점에서 서술할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事實) 부분은 사료(史料)를 남기는 사관(史官)의 마음으로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이 책의 주(主)된 내용은 제18대 대선이 끝난 2012년 말부터 2022년 3월 이곳 대구광역시 달성 사저로 내려오기까지의 약 10년에 걸친 이야기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국정을 운영하면서 한 한 • 일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패쇄, 사드 배치, 지소미아 체결, 공무원연금 개혁 등 대통령으로서 여론에  맞서 고독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때마다 온 힘을 다해준 각료와 참모들의 이야기, 그리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가까운 이의 일탈로 인한  탄핵과 그 이후 4년 9개월간의 구치소에서 겪었던 극한의 날들에 관한 이야기다.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차마 하지 못했던, 때로는 해서는 안 되었던 그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담아보았다.

대통령으로서 이 나라를 위해 후회 없이 일했다. 비록 부족하고 때로는 잘못된 판단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정말 나라를 위해 나를 아끼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국민의 삶이 안정되고, 국민 개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책무라고 생각했고, 외교, 국방, 안보 등이 함께 어우러져야 나라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기에 단 1분의 대통령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권력은 허무한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목표가 있었고, 대통령이 되어서 그 목표를 이루고자 최선을 다해 일부라도 이를 해 놓을 수 있었기에 나는 권력이 결코 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국민이 내게 맡겨주셨던 대통령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채 퇴임함으로써 헌정 중단을 가져온 그 결과에 대해서는 송구할 뿐이다.

이제는 나의 탄핵과 수감 시간은 모두 과거의 일이 되었다.


흔히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한다. 나는 그 과거와 지금 현재는 앞으로의 미래를 여는 실마리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미래는 내가 정치인으로 사는 삶을 이어가는 미래가 아니다. 대통령으로서 겪은 나의 지난 경험을 그것이 공(功)이든 과(過)이든 그대로 들려줌으로써, 앞으로 우리나라의 정치가 이를 밑거름 삼아 지금보다는 더 성숙하기를 바라고, 이런 성숙한 정치를 기반으로 우리나라 국민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그런 미래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더 바라는 것이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화로 국가 성장 동력을 잃어버릴 위험에 직면해 있고,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어 있어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국가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랫듯이, 우리 위대한 국민은 서로 화합하여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미래를 향해 다시 도약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우리나라와 국민을 위해 대통령으로 일할 기회를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이 책의 출간을 위해 지난 9개월 동안 구술을 정리하고 초고의 오 • 탈자 교정 등을 맡아 고생한 중앙일보 김정하 논설위원, 유성운 부장, 손국희 기자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며, 방대한 자료를 정리해서 보내주신 이동찬 변호사와 처음 기획부터 마지막 교정까지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유영하 변호사에게도 깊은 고마음을 표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불행한 역사는 더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 정치인으로서의 파란 많았던 삶을 내려놓고, 소소한 삶의 홀가분함을 느끼고 싶다.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ㅡ 2024년 봄, 박근혜